제네바신학대학원 종교개혁지 탐방(1) – 파리에서 취리히까지(6.17-6.21)

제네바신학대학원 종교개혁지 탐방(1) – 파리에서 취리히까지(6.17-6.21)

2019년 6월 17일 월요일 오전 10시, 종교개혁탐사 참여자들은 모두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모였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여행사 직원의 공지사항을 숙지한 후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러시아항공 SU251편은 예상 시각보다 30분 늦게 이륙했지만 정시보다 20분 일찍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착륙했다. 순조롭게 환승수속을 마친 일행은 2시간 정도를 대기한 후 러시아항공 SU2460편을 타고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프랑스 가이드를 만나 간단히 안내를 받은 후 6월 18일 오전 1시 30분 경 예약한 호텔이 있는 파리 근교의 헝부이에(Rambouillet)에 도착하여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6월 18일은 오전 8시부터 일정이 진행되었다. 시차 적응이 잘 안되어 몸이 다소 피곤했으나 파리로 이동하는 동안에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오전 일정은 파리 시내의 명소들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개선문과 몽마르트를 둘러보고 파리 동(東) 역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후 파리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의 고향인 누아용(Noyon)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일행은 가이드를 통해 프랑스의 종교개혁의 역사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이루어진 역사임을 알게 되었고, 그 숫자는 비록 적지만 천주교가 강세인 프랑스에도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남겨두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할 수 있었다.

누아용에 도착하여 먼저 복원된 칼빈의 생가를 찾아갔다. 전쟁 때 파괴된 것을 남아있는 사진을 토대로 복구하여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가이드의 말로는 한국교회 덕분에 이 박물관이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일행은 칼빈 생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칼빈이 남긴 여러 작품들, 당시 상황을 말해주는 그림들, 참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박해를 견뎠던 프랑스의 기독교인인 위그노와 관련된 내용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칼빈과 그와 함께 했던 동료들의 헌신과 노력 덕분에 현재 우리가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믿음을 따라 살 수 있게 됨을 새삼 기억할 수 있었다.

다시 파리 시내로 돌아온 일행은 저녁 식사를 하고 세느 강 유람선을 타고 강변에 위치한 파리의 명소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 11시 경 숙소에 돌아왔다.

 

6월 19일 일정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고 프랑스의 고속열차인 TGV를 타고 제네바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시내 중심에 있는 루브르에 도착한 일행은 가이드의 신속하고 재치 있는 설명을 들으며 이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것들을 살펴보았다. 열차 시간에 맞추어 파리 리옹(Lyon)역에 도착해 제네바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일행은 제네바 중앙역에 정시에 도착했다. 스위스 가이드를 만나 칼빈의 무덤이 있는 플랭팔레(Plainpalais) 공원묘지로 향했다. 그러나 공사로 인해 묘지에 출입할 수 없었다. 아쉽게 발걸음을 돌린 일행은 레만 호숫가에 조성된 영국 공원(Jardin Anglais)을 둘러보며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후 1시간 30분가량 이동하여 마흐띠니(Martigny)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6월 20일 목요일 아침이 밝았다. 제네바로 가는 길에 비가 내려서 일행은 걱정했으나, 시내에 들어오자 먹구름은 사라지고 환한 햇살이 내렸다. 첫 번째 일정은 바스티옹 공원에 있는 종교개혁기념비(Reformation monument)를 답사하는 것이었다. 기념비는 중앙의 4명의 개혁자 상(파렐, 칼빈, 베자, 녹스)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3명씩 총 10명의 인물들로 구성된 120미터가 넘는 큰 벽(Wall)이었다. 각 상 사이에는 종교개혁과 관련된 부조를 넣어서 제네바의 종교개혁이 유럽과 미국에까지 확산되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 흐름에 한국의 교회가 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일행은 여기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생 피에르 교회당으로 이동했다.

성 피에르 교회당으로 가는 길에 칼빈이 성경과 신학을 강의한 강당을 만났다. 종교개혁운동은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됨을 이 건물은 말하고 있었다. 좀 더 가니 성 피에르 교회당의 웅장한 정면이 나타났다. 내부로 들어간 일행은 교회당 안이 깔끔하게 정리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성도들이 오직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해 과거 로마 천주교의 성당으로 사용되었던 내부의 장식을 철거한 개혁자들의 신학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교회당을 나와 제네바에서 칼빈이 살았던 집으로 향했다. 그가 수백 년 전에 이 길을 걸었을 것을 상상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칼뱅이 살았던 집은 공사중이어서 외관을 볼 수 없었다. 아쉬움으로 발걸음을 돌려 1559년에 개교한 제네바 아카데미가 교사(校舍)로 사용한 건물을 찾아갔다. 제네바 아카데미는 1559년에 개교하여 오랜 시간 동안 유럽 전역에 목회자를 공급하여 종교개혁운동의 본부 역할을 감당했었다. 그 전통과 정신을 제네바신학대학원대학교가 잘 이어받기를 소망했다.

여기까지 답사하니 점심시간이 많이 지났다. 일행은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다음 날 일정을 위해 인터라켄(Interlaken)으로 향했다. 도중에 만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함을 생각할 수 있었다. 인터라켄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일행은 산악열차를 이용해 벵엔(Wengen)이라는 융프라우가 보이는 작은 마을로 이동하여 하룻밤을 보냈다.

 

6월 21일, 일행은 융프라우를 조망할 수 있는 융프라우요흐로 향했다. 높은 알프스를 오르는 산악열차를 1시간 타고 전망대에 도착한 일행은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흠뻑 경험했다. 인터라켄으로 내려와 점심식사를 하고 2시간 30분 정도 이동하여 스위스 북부의 취리히에 도착했다.

취리히는 마르틴 루터와 비슷한 시기에 종교개혁을 진행한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가 사역한 도시였다. 취리히는 호수와 강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강과 호수가 만나는 지점에서 하차한 일행은 15~20분을 걸어가 츠빙글리가 설교하고 가르친 그로스뮌스터에 도착했다. 그로스뮌스터는 ‘큰 예배당’이라는 뜻인데, 그 이름대로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았다. 이 예배당 또한 제네바의 성 피에르 교회당처럼 내부 장식이 철저히 제거되어 성도들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예배당 한편은 다른 건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가이드는 이 건물이 츠빙글리 당시 설교자를 위한 학교였던 예언자회(프로페짜이, Prophezei)가 모였던 건물이라고 했다. 현재 이 건물은 취리히 대학의 신학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는 이렇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왔다.

취리히의 개혁을 시작한 츠빙글리는 1531년 제2차 카펠전투에서 로마천주교 군대에 의해 살해당했다. 개혁은 중단될 위기에 처했으나 그의 후계자인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1575)에 의해 취리히의 종교개혁운동이 계승되었다. 불링거는 제네바의 칼빈과 연합하여 스위스와 전 유럽의 종교개혁을 지도하고 이끌었던 목사요 신학자였다. 하나님은 스위스 지역의 종교개혁운동이 끊어지지 않도록 그를 준비시켰던 것이다. 일행은 그로스뮌스터 주변에 있는 츠빙글리와 불링거의 집을 답사한 후 숙소로 이동하여 하루를 마무리했다.

 

글 : 김석현 원우회장 / 사진·편집 : 신동근 원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