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신학대학원 종교개혁지 탐방(2) – 스트라스부르에서 에르푸르트까지(6.22-6.23)

제네바신학대학원 종교개혁지 탐방(2) – 비텐베르크에서 에르푸르트까지(6.22-6.23)

6월 22일(토) 일행은 취리히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로 향했다. 이동할 때 비가 오고 스트라스부르에서도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강수량이 적어서 답사하는 데 크게 방해되지 않았다. 선선한 가운데 일정을 진행할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독일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먼저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은 멀리서도 보일만큼 웅장했다. 이곳을 먼저 답사하려 했지만, 12시부터 진행되는 기도회로 인해 나중에 들어가기로 했다.

대성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광장에 금속활자 기술을 발명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1468)의 동상이 있었다. 가이드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기술이 종교개혁이 확산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답사한 곳은 마르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가 담임목사로 섬긴 성 토마스교회당이었다. 부처는 마르틴 루터의 영향을 받아 개혁자가 되었는데, 잉글랜드로 이주할 때까지 스트라스부르에서 개혁운동을 이끌어갔다. 그는 제네바에서 추방당해 이곳에 온 칼빈을 강하게 설득하여 자신과 동역하도록 했고, 그에게 프랑스 난민을 목회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처럼 스트라스부르에서 칼빈은 부처를 통해 목회를 배웠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시행한 장로회 정치는 사실상 마르틴 부처가 이미 시행했던 것을 제네바에 더 깊이 적용한 것이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칼빈은 부처의 도움을 받아 더 성숙하고 유연한 종교개혁자가 되었다.

성 토마스교회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칼빈이 목회했던 프랑스 난민교회 예배당(부끌리에 교회당)이 있었다. 이 교회가 칼빈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그때 예배당은 남아있지 않다. 현재 남아있는 예배당은 칼빈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예배당에 프랑스 난민교회의 초대 목사인 칼빈을 기념하는 패가 있어 그가 이곳에서 어떤 사역을 했는지 알려주고 있다. 예배당 바로 옆에는 스트라스부르시절 칼빈이 살았던 집이 보존되어 있었다.

일행은 근처의 ‘쁘띠 프랑스’(Petit France)를 둘러보고 점심식사를 했다. 이후 가이드는 황명길 교수님의 요청을 받아 요하네스 슈투름(Johannes Sturm, 1507~1589)이 세운 학교 건물로 일행을 인도했다. 슈투름이 세운 이 학교에서 칼빈은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종교개혁은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으로 이어짐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도 이 건물은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되는 김나지움으로 사용되어 그 기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둘러보고 2시간 거리에 있는 독일의 보름스(Worms)로 향했다. 1521년 마르틴 루터는 보름스에서 열린 신성로마제국 회의에서 황제를 비롯한 권력자들 앞에서 종교개혁신앙을 철회하기를 거부했다. 작은 도시였지만 이곳에는 루터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일행은 먼저 황제의 예배당이자 주교가 있었던 성당인 보름스 대성당을 답사했다. 이후 제국회의가 열린 장소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 장소가 사유지이고 토요일이어서 개방되지 않았다. 후대에 새긴 동판과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세운 안내판의 설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제국회의가 열렸던 장소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공원이 있다. 그 공원 한복판에는 종교개혁 기념 동상이 있다. 일행이 사진을 남기기 전 가이드는 이 동상을 하나씩 짚어가며 자세히 설명을 이어갔다. 종교개혁은 마르틴 루터라는 한 영웅적인 인물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이미 개혁을 일으킨 사람들에 기초하여 수많은 동역자와 함께, 그리고 종교개혁을 따르는 다른 도시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 설명을 듣고 보니 왜 이곳에 종교개혁 기념 동상이 세워졌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종교개혁운동의 후예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후 일행은 보름스를 떠나 프랑크푸르트의 숙소로 이동하여 하루를 마무리했다.

 

6월 23일(주일) 일정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하여 비텐베르크까지 이르는 긴 여정이었다. 먼저 일행은 루터가 보름스에서 돌아가던 길에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에 의해 10개월간 보호를 받았던 아이제나흐(Eisenach)의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을 답사했다. 일행은 우선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이 성의 역사에 대해 공부했고, 마지막으로 루터가 머문 방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가이드를 통해 루터가 11주 동안 신약성경을 헬라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한 것의 가치와 의미를 깊이 깨달았다. 루터의 성경 번역은 독일인의 신앙에 유익을 주었을 뿐 아니라 독일어의 통일과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고 가이드는

일행은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내려와 점심식사를 한 후 루터가 아이제나흐에서 문법학교를 다녔을 때 살았던 집, 그가 출석했던 성 게오르그 교회 예배당 등을 살펴본 후에 에르푸르트로 이동했다.

에르푸르트 시내로 들어가기 전 루터의 삶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었던 슈토테른하임의 들판에 들렀다. 여기서 한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할 수 있었다. 벼락을 만난 루터는 당시의 잘못된 관습에 따라 성 안나에게 수도사가 되겠다는 서원을 했으나, 하나님은 그 서원을 통해 그를 미래의 개혁자로 준비하셨던 것이다.

에르푸르트 시내에 들어온 일행은 먼저 루터가 수도사 생활을 했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도원 건물을 답사했다. 현재 수도원의 기능은 사라지고 예배당과 문화센터로 사용되고 있음에도 수도원의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곳에서 루터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루터는 수도사 생활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비참함,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인간의 실상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가 속한 로마 천주교회의 모순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수도원에서 마르틴 루터를 적절하게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수도원 건물을 나온 일행은 루터가 수도사가 되기 전에 공부했던 에르푸르트 대학, 그가 로마 천주교의 사제 서품을 받았던 예배당을 살펴보았다. 이후 2시간 30분 정도 이동하여 루터가 35년 이상 거주한 비텐베르크에 도착했다.

여행사의 배려로 일행은 루터의 집 바로 옆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방 배정후 구 시가지 광장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호텔의 세미나룸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다음날 일정은 비텐베르크 시내의 루터의 유산을 답사하고 베를린으로 이동하는 일정으로 전과 달리 여유가 있었다. 덕분에 일행은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푹 쉴 수 있었다.

 

글 : 김석현 원우회장 / 사진·편집 : 신동근 원우